이사야의 예언은 중의적 성격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한편으로 이 예언들은 선지자로서 이사야가 받은 부름과 당시 시대 상황과 배경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사야는 똑같은 사건들을 절정의 시기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사건을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했다. 이사야가 어떤 역사적, 지리적, 정치적 맥락에서 예언했는지를 알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니파이후서 25:5~6 참조)
이사야가 예언했을 당시 이스라엘에는 두 왕국, 즉 남쪽에 있는 유다 왕국과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왕국(또는 에브라임)이 있었다. 그리고 수리아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 모두와, 또는 둘 중 한 왕국과 때로는 적국이었고 때로는 동맹국이었다.(경전 안내서, “연대표: 이스라엘의 사건”과 “유다의 사건”, 196~197쪽 참조) 다음은 이들 세 나라와 관련된 용어들이다.
국가 | 수도 | 영토 또는 지파 | 지도자 |
---|---|---|---|
유다 | 예루살렘 | 유다 | 아하스, 다윗의 혈통 |
수리아 | 다메섹 | 아람 | 르신 |
이스라엘 | 사마리아 | 에브라임 | 베가, 르말리야의 아들 |
이사야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국력과 번영이 쇠퇴해 가던 시기에 성역을 베풀도록 부름받았다.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브라임)은 수리아와 서로 힘을 합쳐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유다 왕국이 동맹을 거절하자 이스라엘과 수리아는 유다를 공격했다.(니파이후서 17:1 참조)
이사야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다 왕국이 정치적 동맹을 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아하스는 주님의 경고를 거절했다.(열왕기하 16:7~20 참조) 아하스는 앗수르 왕인 디글랏 빌레셀 2세(불)와 언약을 맺었으며, 유다는 수리아와 이스라엘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앗수르에 공물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다. 그러나 앗수르는 작은 왕국들을 서서히 멸망시켰다. 주전 732년에 먼저 다메섹(수리아)이 무너졌으며, 주전 722년에는 사마리아(이스라엘)가, 주전 701년에는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모든 성이 차례로 앗수르에게 정복당했다.
이사야의 많은 예언과 마찬가지로 그의 시대에 성취된 예언이 한 가지 있었다.(열왕기하 16~18장 참조) 이는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에서 드러난다. 니파이후서 17~24장(또한 이사야 7~14장 참조)을 각 장 소개와 함께 주의 깊게 읽어보면 이사야의 예언이 우리가 기다리는 위대한 사건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에 앞서 일어날 심판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계속 이어지는 세대와 이 중요한 기록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성신의 역할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이 “복합적으로 성취되었음”을 지적했다. “이사야서에는 수많은 예언이 담겨 있는데, 예언이 성취된 것은 상당히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한 예언이 이사야 시대 사람들에 관련되어 있는가 하면 다음 세대에 일어날 상황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종종 상징적으로 절정의 시기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 그리고 그 동일한 예언이 또 다른 의미에서 구주의 재림에 해당하는 사건들이나 그 성취와 관련이 있기도 합니다. 이들 예언이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신으로부터 계시를 구해야 한다는 점을 뒷받침합니다.”(“Scripture Reading and Revelation,” Ensign, Jan. 199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