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니파이후서 19장 6~7절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의 성취가 속죄와 복천년 시기 둘 다와 관련이 있다고 기록했다. “정사가 궁극적으로 그분 어깨에 있을 것이라는 말은 온 세상이 언젠가는 그분이 만주의 주이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거룩한 주권자 및 대제사로서 지니신 위엄과 신성한 예복을 갖추시고 이 땅과 그분의 교회를 친히 통치하시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임을 확증하는 말이다. 정사와 그것에 관한 짐이 그분 어깨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짊어질 짐은 크게 가벼워지리라는 사실에서 모든 사람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죄(또는 적어도 여기에서는 우리의 현세적 짐)를 그분 어깨로 가져가신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 이사야가 남긴 또다른 예언이다.”(Christ and the New Covenant, 80)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다양한 명칭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설명을 했다.
“그분은 ‘경이로운 모사’로서 하늘 심판대에서 우리 마음속 동기를 변호하시는 우리의 중보자요 중재자가 되실 것이다. 일찍이 이사야는 (그리고 니파이는) ‘주께서 변호하러 일어서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라고 상기시켰다.[니파이후서 13:13] 후기 경전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의 모사요 대변자이신 그분께서 지니신 크나큰 연민을 생각해 보라.
‘아버지께 대한 변호자가 되는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는 아버지 앞에 너희 문제를 변호하고 있나니—
아뢰기를,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기뻐하신 자요 아무 죄도 범하지 아니한 자가 겪은 고난과 죽음을 보시옵소서. 당신 아들의 흘린 피를 보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친히 영광을 얻으시려고 주신 자의 피로소이다.
그러하온즉 아버지여, 나의 이름을 믿는 이 나의 형제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내게 나아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옵소서 하느니라.’[교성 45:3~5]
물론 이사야가 지적한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중재자이실 뿐만 아니라 심판자이시기도 하다.[모사이야서 3:10; 모로나이서 10:34; 모세서 6:57 참조] 심판하는 그분의 역할을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그분의 백성을 구속하러 내려오실 것이라고 되풀이한 아빈아다이의 말에서 훨씬 더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모사이야서 13:28; 또한 모사이야서 13:34; 15:1; 앨마서 42:15 참조] 이것은 마치 하늘의 그 거대한 법정에 앉은 재판관께서 재판대에 선 죄 지은 사람들의 무거운 짐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대신 짊어지라고 하고 싶지 않았기에 직접 판사복을 벗고 지상에 친히 내려와서 그들이 받을 매질을 몸소 받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자비로운 재판관이시라는 사실은 그분께서 모사요, 중보자요, 변호자이시라는 사실만큼이나 아름답고 경이롭다.
‘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권능과 힘, 전능하심, 대적할 수 없는 영향력을 나타낸다. 이사야는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이 저지른 죄와 범법의 결과를 항상 극복하실 수 있으며, 이스라엘 자녀들을 억압하고자 하는 자에게 영원토록 승리하실 것을 보았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그리스도께서 무수한 세상을 창조하신 아버지, 부활을 통해 육신의 생명을 회복하시는 아버지, 영적으로 그분에게서 난 아들과 딸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아버지이시며 신성한 권세를 위임받아 아버지(엘로힘)를 대신하여 행하시는 분이라는 기본 교리를 강조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그분에게서 나서 그분의 아들과 딸이 되기를 구해야 한다.[모사이야서 5:7 참조]
마지막으로 ‘평강의 왕’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장차 왕께서 오실 때는 인간의 마음이나 세상 여러 민족 사이에 더는 전쟁이 없으리라는 사실에 기뻐한다. 이 왕은 평화로운 왕이자 예루살렘이 될 도시인 살렘의 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시대를 불문하고 필멸의 상태에서 그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실 것이며, 그분의 복천년과 복천년 이후에 있을 영광의 왕국에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안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Christ and the New Covenant, 8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