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몬은 자신이 니파이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말했을 때 그들이 “떨며 …… 노를 품[었다고]” (모로나이서 9:4) 썼다. 그러한 반응은 다른 경전에서도 볼 수 있는, 의로운 원리에 대해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사람들의 예와 일치한다. 야렛인들은 이더를 거부하고 그를 죽이고자 했다.(이더서 13:22 참조) 예루살렘 주민들은 리하이의 생명을 빼앗고자 했다.(니파이전서 1:19~20 참조) 앰몬아이하에 살던 불의한 사람들은 크게 노하여 믿는 사람들과 경전을 모두 태워 버렸다.(앨마서 14장 참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러한 반응은 도시 또는 사회가 완전히 멸망하기 전에 자주 나타나는 간악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우리 시대에 많은 사람이 자신이 분노에 희생되었다고 믿는다. 칠십인인 린 지 로빈스 장로는 분노에 반응할지 안 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사탄이] 사용하는 교활한 전략은 분노를 선택의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분리시킴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아무런 제어도 할 수 없는 감정의 희생자라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정을 잃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평정을 잃는다는 말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흥미로운 표현입니다. ‘무엇을 잃다’라는 말은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무심결에’, ‘책임이 없는’ 즉, 부주의하다는 의미이며 ‘책임이 없다’는 뜻이 강합니다.
‘날 화나게 했어요.’ 이 또한 우리가 흔히 듣는 말로, 자제나 선택의지가 부족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념들의 실체는 폭로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가하는 어떠한 힘도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의식적인 선택이며 결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내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로서 어쩔 수 없어요!’ 하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작가인 윌리엄 윌뱅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해 버렸습니다.
‘공격, …… 분노 억제, 대화하기, 소리치고 고함지르기’ 등은 모두 분노에 대처하며 체득한 전략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자신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입증된 것을 선택한다. 직장 상사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자제력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친구나 가족 때문에 화를 내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The New Obscenity’, Reader’s Digest, 1988년 12월호, 24쪽)” (성도의 벗, 1998년 7월호, 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