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몬경에는 맹세를 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맹세는 니파이 시대와 그 문화권에서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맹세에 구속력이 있다는 원리는 어떤 단언을 확증하기 위해 최종으로 신성한 권위자에게 호소하는 행위라고 언급한 [히브리서 6장 16절]에 근거를 둔다. 맹세로 약속을 하거나 고발을 할 때 전능하신 이의 이름을 건다. 즉, 가장 확고하고 엄숙한 방법으로 맹세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최고 권위자에게 호소한 그 맹세는 항상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구속력 있는 것이었다. 이런 행동 원리 때문에, 한 편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다른 한 편에서는 이교도 신들을 걸고 호소하는 행위가 경전에서는 충성심에 대한 시험으로 간주된다.”(William Smith, ed., A Dictionary of the Bible [n.d.], “Oath,” 467; 또한 15쪽에 나오는 니파이전서 4:30~37 해설 참조)
한 학자는 고대에 맹세가 발휘하던 힘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구 독자들에게는 니파이가 조램에게 한 맹세가 발휘하는 엄청난 효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협약을 맺는 몇 마디 말을 들은 조램은 즉시 유순해졌으며, 마찬가지로 조램이 ‘그 때로부터 이후로는 [니파이 형제들과] 함께 머물겠다고 …… 맹세[하자마자] …… 그에 관한 [니파이 형제들의] 두려움은 그쳤[습니다.]’(니파이전서 4:35, 37)
맹세라는 것이 사막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가장 신성하고 어길 수 없는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안다면 이런 반응은 이해가 됩니다. ‘아랍인들은 설사 목숨이 위태로울지라도 맹세를 깨뜨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 유목민에게 그보다 더 강력하고 신성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조건을 건 요구였다면 도시에 사는 아랍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권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두인족에게 맹세는 신성한 것입니다. 거짓으로 맹세하는 사람에게는 화 있을 것이며,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훼손될 것입니다. 아무도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벌금도 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맹세에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구속력 있고 엄숙한 맹세가 되려면 풀잎 하나라도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내 목숨을 건’ 또는 (흔하지는 않지만) ‘내 머리의 목숨을 건’ 맹세보다 더 엄중한 유일한 맹세는 바로 wa hayat Allah로, ‘하나님의 생명을 걸고’ 또는 ‘주께서 살아 계심같이’라고 말하는 맹세입니다. 이는 고대 히브리어 hai Elohim과 정확히 일치하는 아랍어입니다. 오늘날에는 도시 하층민들이 자주 쓰는 말이 되었지만, 고대에는 대단히 엄중한 말이었으며 사막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그런 효력이 있습니다. [찰스 엠] 다우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베두인족 방식대로 제 대답을 확언했습니다. 목숨을 걸겠다는 …… 그의 말에 ……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더 중요한 일에서는 유목민들도 그런 말을 쓰지만 작은 일에서는 당신의 목숨을 걸고라고 말합니다.’ [사무엘] 로젠블랫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랍인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걸지 않은 맹세는 맹세가 아닙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생명”까지 거는 맹세도 흔한 일입니다.’
따라서 니파이가 자신를 경계하던 조램을 즉시 진정시킬 방법은 그 셈족에게 어느 누구도 감히 깰 수 없는 가장 엄중한 맹세 즉, ‘주께서 살아 계시고 또 내가 살아 있음같이’(니파이전서 4:32)라고 말하는 방법밖에 없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Hugh Nibley, An Approach to the Book of Mormon, 2nd ed. [1964], 104~5)